2008년 07월 08일
요즘 돌아가는 시국에 대해서 하고 싶었던 말.

너의 적을 사랑하라.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어 주어라. -예수 그리스도-
너의 적을 사랑하라. 그들은 너의 결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크린-
너의 적을 사랑하라. 그들은 너의 결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크린-
다른 할말은 집어 치우고라도,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예전에 이미 제가 하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먼저 했더라구요. 그래서 인용 합니다.
저 말은 이상론이 아닙니다. 가장 현실을 잘 바라본 말이죠.
그리고, 현실을 잘 바라봤다는 것의 기준은, 결과적으로 이 현실에서 어떤 미래를 예상했는가로 따집니다. 예수는 서로를 증오하는 현실에서, 이득없이 증오로 점칠된 소모만 계속되리란걸 알았던 것이고, 벤자민은 상대의 결점이 자신의 장점이며, 자신의 결점이 상대의 장점이라는 진리를 말한거죠.
그리고 그 둘은 경계합니다. 적을 사랑하지 않고 증오하게 되면, 상대방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을 보지 못하고, 상대방과 끝없이 불필요한 경쟁만 하게 될테니까요. 그 경쟁은, 폭력이죠.
그래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적을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p.s. 끌어다 쓴 사진은, 흑인 의사들이 KuKluxKlan 단원을 치료하는 모습입니다. 조작되었건 진실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구요.
그런데 역시나 예전에 이미 제가 하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먼저 했더라구요. 그래서 인용 합니다.
저 말은 이상론이 아닙니다. 가장 현실을 잘 바라본 말이죠.
그리고, 현실을 잘 바라봤다는 것의 기준은, 결과적으로 이 현실에서 어떤 미래를 예상했는가로 따집니다. 예수는 서로를 증오하는 현실에서, 이득없이 증오로 점칠된 소모만 계속되리란걸 알았던 것이고, 벤자민은 상대의 결점이 자신의 장점이며, 자신의 결점이 상대의 장점이라는 진리를 말한거죠.
그리고 그 둘은 경계합니다. 적을 사랑하지 않고 증오하게 되면, 상대방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을 보지 못하고, 상대방과 끝없이 불필요한 경쟁만 하게 될테니까요. 그 경쟁은, 폭력이죠.
그래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적을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p.s. 끌어다 쓴 사진은, 흑인 의사들이 KuKluxKlan 단원을 치료하는 모습입니다. 조작되었건 진실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구요.
# by | 2008/07/08 11:35 | 트랙백 | 덧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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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부는 제각각이지만, 그안에 흐르는 피는 전부 붉은 색이죠.
결국 이것도 힘과 권력을 국민손에 쥐냐, 정치인들 손에 넘기느냐의 싸움이고.
적을 사랑? 그런건 못하겠고, 할 수 있는건 최대한 지능적으로 힘의 원천을 적한테서 뺏어오는 것뿐.
그리고 내가 말하는 정치권력으로써의 힘이랑 그 힘이랑 지금 다르잖음 'ㅅ'
국민이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운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고, 4.19고 5.18이지. 그리고 그 결실을 통해 얻어낸게 민주주의고. 그리고 국민은 스스로 어리석은 전략적, 전술적 판단으로 그 힘과 권력을 하나씩 상대편에게 넘겨주었고. 지금 다시 수복전을 펼치는거지.
결국, 이건 총알과 무기만 돌아다니지 않을 뿐, 어찌보면 그보다 무서운 전쟁이야.
전쟁에서 적병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안돼지, 암. 적병에게 자비를 베풀고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대했다가 검증을 게을리해 수많은 짜가 정치인이 국회에 유입됬고, 최악의 병크인 이명박이 당선됬지. 그게 자비를 베푼 대가야.
적병이 항복하고 힘을 넘기지 않는 이상, 일말의 자비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해나가면서, 힘과 권력을 다시 수복하는 것이 국민이 할일이지.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좀 더 미래를 보면 좋겠군. 커맨더 니가 바라보는 미래보다 더 뒤의 미래를.
간디는 지능적으로 그 길을 택한거야,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무서운 힘이라는걸 알고 있기에.
진짜 적병이 불쌍해서, 사랑하고 자비를 베푼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보임'으로써 탁월한 선전활동을 수행했던거지. 이미지의 힘이 뭔지 알고 있었던거야. 간디는.
그거랑 적에게 자비를 베풀고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 다른 개념이지.
그래서 지금 촛불시위도 비폭력 노선을 외치고 있는거지.
한가지 더,
우리가 일본에게 독립할 수 있었던건 일본에 대한 자비가 아니라 일본에 대한 증오가 그 원동력이었다는걸 기억해라.
그리고 우리나라 독립이랑 현 사태랑 같은 맥락으로 묶지 마라. 난 사상만 묶었지만, 넌 상황까지 묶고 있다. 다른건 분명히 다른거다. 지금 우린 지도자가 사분오열해서 각자 총들고 게릴라 펼치던 시대에 살고 있는거 아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을 안했다고 내가 그 말을 부정한다고 '어림짐작' 하고 사람 평가하지 마라. 기분 굉장히 나쁘다.
간디는 전략의 하나로써 선전과 이미지 정치를 꾀한거고 네 글은 단순히 자비를 베풀자는 글로 보여. 그런 자비는 아무 쓸모가 없다니까. 간디처럼 철저한 계산을 통해서 도구로 삼아야 제 힘을 발휘하는거지.
간디가 적을 사랑한건가? 난 전혀 아니라고 보는데.
그리고 독립전쟁때와 지금의 차이는 구체화된 폭력만 없다는거지 상황은 거의 비슷하구만. 기득권층의 효율적인 압제가 국민들의 권리를 뻇어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국민들은 거기에 저항하거나, 혹은 거기에 의지하거나 두 길중 하나를 택하고 있지. 꽤 유사하지 않나?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탄압과 폭력만 없을 뿐, 같은거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뭔뜻인지 모르겠어.
내가 진심을 담아 사랑하는것만 사랑이라고 규정지었다고 어림짐작했을 뿐이잖아? 언급을 안했다고 내가 그랬다는게 말이 돼? 어떠한 의문점을 제기하지도 않고 그걸 단숨에 규정해서 비난하는게 정말 옳은거라고 생각해?
그냥 싫을 뿐이잖아. 내 논리가.
그리고, 아마 지금 너한테 '이명박을 용서하는척' 이라도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할거다. 사랑하는걸 과소평가 하지 마라. 입에 발린 사랑도 어렵다.
그건 현재 촛불시위의 모습하고 똑같고. 간디는 영국인들에게 난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라거나 자비를 베풀지는 않았어. 그냥 원칙적인 사랑과 자애를 외쳤을뿐이지 실제로는 비폭력 이미지와, 단식, 물레 굴리기등을 통한 이미지 선전 수단 중에 사랑이라는 '발언'만 들어간 것 뿐이다.
그는 영국인 정치가들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분명히 다르단거야.
(하지만 용서라는 게 덮어놓고 잊고 덮어놓고 따르자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단어라면 그건 경계해야 할 일이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풀이하려고 드는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건 그냥 피해망상일까요)
주인장께서는 주체를 정해주셨지만 왠지 좀 더 폭넓게 읽혀서 뻘플을 답니다(..)
진실은 최후에 남은 사실입니다.
다만 최후에 남기 위해서는 적과 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행하는 분석만큼 정확하게 하는 분석이 없다는 점에서 프랭클린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인터넷 덕분에 '진실이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왔습니다. 여러가지 서로 상반되는 사실들 속에서 모든 반론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실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게 문제죠. 지금 정국은.
저도 분명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이라고 했는뎁쇼. '살아남을 것이다' 가 아니고 말입니다. 백색잡음에 묻혀 자체 재생산되고 파편화되는 쪽이, '원천이 확실해서 결국 발본색원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보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쉽게 이길 줄 알았습니까?" "그렇게 금방 포기할만한 싸움입니까?"
결론은 인터넷 종량제만은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어?!)
현실이란 존재의 무거움을 알면서도 현실을 강요하지마. 모든 사람이 그거 짊어지고 버티진 못해.
정 속터지면 그 사람을 운동시켜서 현실을 딧고 일어서게 해야지, 어린애한테 쌀 한가마 던져주는거랑 다를바가 없는 행동은 하면 안된다는거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받을 능력이 없어서 피하는건데, 그래놓고는 한다는 말이 '아 저 등신새끼' 면 안되는거지.
게바라 아저씨의 말씀.
우공이 아니면 산은 못 옮기는 겁니다.